이름 | |
출생 | 1956년 4월 6일 (68세) |
강원도 춘천시 (現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
본관 | 밀양 박씨 |
현직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
재임기간 | 제3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장관급) |
2024년 12월 7일 ~ 현직 | |
배우자 | 민일영 |
자녀 | 슬하 2남 |
종교 | 가톨릭(세레명:매임 데레사) |
학력 | 춘천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법학 /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박사) |
소속 정당 | 무소속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18 |
경력 | 건국대학교 강사 서울시립대학교 강사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경기대학교 겸임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연구소 연구부교수 가톨릭대학교 법경학부 법학전공 조교수 국가청렴위원회 위원 한국지방자치법학회 부회장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인천지방검찰청부천지청 화해조정위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 방송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 자유선진당 공동대변인 제18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제18대 국회 여성위원회 위원 자유선진당 제1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자유선진당 원내수석부대표 물망초 학교 이사장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21세기교육포럼 대표 제3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윤석열 정부) |
대한민국의 법학자, 정치인, 언론인이다. 가톨릭대학교·동국대학교 교수, 제18대 국회의원, 2018년 서울특별시교육감 후보 등을 지냈다. 정치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가장 오랜 시간을 일한 건 법학자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교육감 후보자로 재출마했으나 최종 3위로 낙선하였다.
1956년 4월 6일 출생으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춘천여고, 이화여자대학교 법학 학사, 서울대학교 법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MBC기자, 교수, 정치인 등으로서 활약했다.
박선영은 1956년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딸 셋 중 맏이로 출생했다. 원래 이름은 ‘박연희’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9살 때 외가가 있던 춘천으로 이사했다. 춘천 동사무소 직원이 이름을 옮겨 적으면서 ‘연(蓮)’을 ‘운(運)’으로 잘못 적었는데 후에 전학통지서를 받은 초등학교 담임 교사가 그를 “박운희”라고 불렀을 때야 비로소 이름이 바뀐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두 동생의 이름도 졸지에 ‘연’자가 ‘운’자로 달라졌다.
개명을 위해서는 법원에 소를 제기해야 했으나 변호사까지 선임해 이름을 고치는 일은 밥 먹기조차 쉽지 않았던 그의 가정엔 너무 큰 사치였다. “새로운 이름도 나쁘지 않으니 그냥 살자”는 어머니의 설득에 공책에 적힌 이름을 고무로 그날 밤 싹싹 지웠다. 새 이름의 발음 때문에 그는 학창시절 내내 ‘바구니’ ‘소쿠리’ 같은 별명을 들었다.
197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그는 1년 뒤 직종을 바꿔 12년간 기자로 활동하였다.
방송 여기자가 귀하던 시절 보건복지 관련 부처를 출입하며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관련 리포트를 하던 모습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본인의 이름을 빗댄 ‘바구니에 가득한 경제’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그의 미니홈피에 ‘MBC 박운희 기자와 많이 닮았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군부 독재 시절의 기자 생활을 통해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몸으로 깨달았다. 박선영은 “내가 쓴 기사를 빨간 펜으로 지우거나 못 내보내게 하고, 취재도 못 하게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며 “그런 경험을 통해 표현의 자유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박선영은 기자생활을 하면서 탈북자나 국군포로를 돕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문화일보 인터뷰 中“기자 생활을 하면서다. 다른 기자들은 관심도 안 가졌지만, 관심 갖는 저를 이상하게 보거나 제한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묻고 대답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내가 모르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라, 사회, 인간의 사고방식을 그때 다 봤던 것 같다.” |
이화여대 법대를 수석 졸업한 뒤, 금전상의 형편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직장 생활을 하였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1989년에 방송사를 그만두었다.
한번 빠지면 무섭게 몰입하는 성격 덕택에 2년만에 석사과정을 끝내고, 1995년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서 헌법 전공자 중 최단기 박사학위 취득(3년 반)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박선영은 향후 2018년도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보물에 “헌법학자로서 헌법이 철저히 무시된 현재의 교육현장을 바로 잡겠다”라고 말했다.
2003년 박선영은 한국언론법학회가 제정한 철우언론법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쟁쟁한 학자들이 펴낸 100여 편의 논문과 저서를 제치고 ‘언론정보법연구Ⅱ-방송의 자유와 법적 제한’이라는 그의 저서가 뽑혔다. 연구 및 저술 기간은 2년이었지만 박선영은 “책에 녹아 있는 기자 생활 등까지 포함하면 20년 동안 쓴 책”이라고 말했다
교수가 되면서 이름을 ‘박선영’으로 개명했는데 새 이름은 ‘베풀 선(宣), 비출 영(映)’이다. 두 명의 은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고 싶다는 의미라고 한다. 한 명은 76년 시국사건에 연루된 그를 서대문경찰서 면회실로 찾아와 “이 아이는 내가 책임진다” 며 데리고 나온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이다. 다른 한 명은 MBC 입사 때 신원조회에 걸린 그를 자신이 보증한다며 입사시킨 이환의 전 사장이다.
박선영은 학점이 인색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교수로 손꼽히며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집으로 꽃 배달이 날아오고 학생들의 감사 문자가 수백통씩 쇄도한다고 한다.
(2000~2002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BK21 계약교수 / 2002~2003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연구소 연구교수)
2003~2007 : 가톨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007~2016.2 :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조교수
2016.3~2021.8 :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부교수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3번에 배정됐다. 박선영은 18대 국회의원 총 선거를 앞두고 열린 제3차 공직선거정책토론회 사회를 보던 중, 당시 토론자로 나선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눈에 띄어 발탁되었다. 당시 춘천여고가 36여년 만에 배출한 여성 국회의원이다.
2008년 새해 어느 날. 거대 정당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우리 당에 비례대표 신청 좀 해 달라’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웬 비례대표? 그 후 한 달도 더 지난 어느 날 아침, 이번에는 신생 정당에서 전화가 왔다. 또 비례대표가 돼 달라고. 처음엔 거절하고 피하다가 설득과 회유를 받으며 문득, ‘헌법교수가 입법론도 가르치고 국회도 가르치는데 실무를 좀 알면 살아 있는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거관리위원회 마감날 직전에야 ‘예스’를 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되면서 나는 꿈에 부풀었다. |
초선이었으나 국회의원을 지낸 4년동안 어느 누구보다도 활발한 의정활동을 선보이며 ‘2011 한국 정경문화대상’에서 정치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소속당의 대변인도 같이 맡았으며 우리나라 정당정치 사상 최장수 여성 대변인이다.
자유선진당 대변인, 정책위원장 의장,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 국가청렴위원회 위원,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여성가족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박선영은 국회의원 당선 직후 한 인터뷰에서 향후 의정활동 계획과 관련해 “포퓰리즘에 의한 (의해 만들어진) 법안들을 개정하고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살리는 방향으로 입법을 하겠다”면서 “처음 2년은 교육위원회, 나머지 2년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하고 싶다”고 바람을 나타낸 바 있다.
교육기본법
국가자치단체의 다문화교육수립법
다문화가정에 대한 교육차별금지법
여성발전기본법
한부모가정지원법
학교안전사고예방 및 학교안전사고대책에 관한 법률
양육비 선지급 법안
국제아동납치 민간부분에 관한 헤이그협약
도서관법 개정안
초중등교육법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발의
박선영은 18대 국회의원 시절 4년 내내 ‘역사의 조난자’라는 표현을 썼다. 역사의 조난자란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로 국군포로나 탈북자, 아직 우리 곁에 오지 못한 사할린 한인들과 시베리아 동포들을 일컫는다.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 항의 단식농성
제네바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 참석
탈진으로 쓰러져 입원해있던 당시 병원 안에서 한 인터뷰에서 “지금 건강상태로 (유엔인권이사회에) 갈 수 있나”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의사는 안 된다고 하더라. 남편도 다른 건 몰라도 거기 가는 건 안 된다고 펄쩍 뛰고 있다. 그래도 어쩌나. 지금 갈 사람이 없다. 국회의원들도 다들 4ㆍ11총선 때문에 시간 내기 쉽지 않다. 건강은 하느님이 주시겠지. 제네바 다녀와서도 이 문제를 천착하지 않으면 중국은 똑같이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여기 있으면서도 아는 분들이나 단체에서 병문안 오겠다고 하시면 여기보다 탈북자를 위한 촛불집회에 나가달라고 한다.” |
“탈북자의 ‘대모’로 불리는데 탈북자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질문에 대한 답변
2010년 ‘사할린 한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
2012년 2월 24일 박선영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날은 박선영이 체포된 탈북자들을 북한에 강제 송환하려는 중국 정부에 항의해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인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결의안은 유엔난민기구 등 국제기구가 중국 정부에 탈북자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하도록 강력히 요청토록 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국회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입국할 경우 신속하고 안전하게 입국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과 북한을 비판하는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는 진보진영이 결의안에 찬성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김학순 국회 속기자는 국회의원의 연설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고 한다.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탈북자 강제 송환에 반대하면서 단식하다가 국회에 나와 힘없는 목소리로 탈북자 북송 반대 결의안을 발표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
2011.02.22. 경기 여주군에서 경북 울릉군 을릉읍 독도리 산 30번지로 본적을 바꿨다. 국회의원이 본적을 독도로 변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의원의 독도 본적 취득은 3·1절을 앞둔 시점이어서 ‘우리 땅 지키기’ 여론 확산을 도모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2011.04.16. 독도 거주 지원법안 발의했다.
그외 박선영은 2009년 11월에는 일본이 2차대전 패전 직후 스스로 독도를 외국으로 분류한 일본 대장성 고시 654호를 입수해 공개, 2010년 9월 2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군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시한 1945년도 지도를 찾아 공개, 2011년 4월 일본 내무성 지리국이 1883년 개정한 ‘대일본국전도’에 독도가 일본 땅에 속해있지 않다고 최초 공개하는 등 그동안 독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박선영은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직후인 2008년 4월부터 3년 가까이 대변인으로 재임하며 ‘선진당의 입’역할을 했다.
박 대변인은 아담한 체구와 달리 강단 있는 목소리에 송곳 같은 논평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안보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내곤 했다.
박 대변인은 꼼꼼한 글 쓰기에 이은 브리핑으로도 얼굴을 알렸다. 2011년 01월 10일 오후 대변인직 수행 1000일을 자축하는 브리핑 자리에서 “정당별 글로 쓰는 논평은 가장 많이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통상 3∼4명의 대변인을 두고 있는 반면, 박선영은 대변인 시절 자유선진당의 논평을 혼자서 책임졌다. 그는 “다른 당과 달리 반드시 글로 먼저 쓰고 가서 브리핑을 하다보니 글이 축약되고 한번 더 생각한 뒤 정리된 것을 말하다보니 같은 말을 해도 논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자유선진당은 군소정당이다 보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추임새까지 넣어야 했기에 그만큼 더 안간힘을 쓰게 됐다”고 ‘장수의 비결’을 밝혔다.
2011년 3월 3일 박선영은 대변인에서 정책위의장으로 보직 변경됐다.
정책위의장에 부임하면서 제일 먼저 ‘국민이 피부로 직접 느낄수 있는 행정소송법 전면개정과 IT감리제도 도입’ 등 국민을 위한 정책개발과 법제도 개선부터 시작했다.
“국민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법제도 개선할거구요 정책 개발할거에요. 그래서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행정소송법 전면 개정. ‘국민이 편하게 행정부하고 일할 수 있게 도와드려야겠다’ 이런 생각에서 전면 개정작업에 착수했고요. IT감리제도를 도입하는 정책도 지금 개발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
2011년 5월 9일 박선영 정책위의장 주최, ‘MB정부 부동산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정책세미나를 열었다.
2012. 5. 22. 사단법인 물망초 발기인 총회
2012. 9. 21. 물망초학교 개교(교장 : 김중수 교수)
2012. 11. 25. 물망초치과 개원(원장 : 김종철 교수, 물망초학교 내)
2013. 4. 3. 물망초인권연구소 설립(연구소장 : 이재원변호사)
2013. 5. 13. 국군포로신고센터 설립(신고센터장 : 김현 변호사)
2013. 9. 24. 국군포로송환위원회 설립(송환위원장 : 김현 변호사)
2013 .10. 21. 도서출판물망초 설립(편집위원장 :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
2014. 12. 16. 물망초열린학교 개교(학교장 송수현 변호사)
2015 김정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
2016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2022년 박선영은 제3회 한원채인권상 특별상을 박근혜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등과 함께 수상했다. 한원채인권재단은 “박선영의 지속적인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과 특별한 실천 등 숭고한 헌신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이 상을 드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단법인 물망초에 대한 평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에 보수 단일 후보로 출마했으나 조희연에게 밀려 낙선했다. 2018년 당시 정치권 분위기는 탄핵 직후라 보수가 거의 궤멸 직전이었음에도 높은 득표율(36.15%)을 얻었다.
2018년 선거 당시 조영달 교수가 단일화를 거부하는 바람에 조희연 교육감이 당선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19년에는 공정과 정의를 확보하기 위해 출범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특별기구 ‘저스티스리그’ 위원회에서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 위원회에서는 ‘정시 확대’를 당론화하고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 시험 자격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발의토록 했다.
2021년 국민의힘이 진행한 ‘대선주자 국민 시그널 공개면접’에서 면접관으로 참여했으며, 2022년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주자의 교육정책특보로 활동했다. 윤석열이 교육 공약으로 코딩 교육을 발표했는데, 이는 박선영이 제안한 내용이다.
이처럼 국민의힘과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지만, 당에 가입한 적은 없다. 간혹 박선영을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출신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본인은 자유선진당 외에는 다른 정당에 가입한 바 없다.
‘교육을 바꿔야 진정한 정권교체’, ‘교육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에 재출마한다. ‘1호’로 서울특별시교육감 예비 후보를 등록했다.
박선영 서울특별시교육감 예비 후보는 전교조와 좌파교육감의 위선을 바로 잡고 ‘교육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과감한 슬로건과 함께 무상교육, 고교선택제 전면 확대, 코딩-스팀교육 확대를 내세우며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간의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조전혁 후보와 표가 갈리는 바람에 당선이 실패했다. 조전혁의 단일화 과정에서의 욕설 논란으로 반사 이익을 얻나 싶었으나 2위 득표율을 가진 조전혁과 근소한 표 차이로 줄이는 것에 그쳤다.
2024년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의 재가에 의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사태를 일으킨 지 나흘째 되던 날이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본회의 표결 하루 전의 인사이다. 언론에서는 박선영 위원장의 제부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인 정형식 판사라는 사실이 조명되기도 하였다.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매임 데레사이다.
남편은 민일영(閔日榮) 전 대법관이고, 장남 민경호(閔庚浩, 1986.1.17 ~ )와 차남 민경준(閔庚俊, 1988 ~ )도 변호사로, 각각 사법연수원 43기 및 변호사시험 5기이다.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지사의 이종사촌 누나이다. 둘다 고향이 춘천시이며, 어릴 때 한 집에서 산 적도 있다고 한다.
정형식 헌법재판관의 처형이기도 하다. 박선영 의원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친척관계를 두고 “완전히 적폐 가족이죠? ㅎㅎㅎ”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스승님이 생각하는 박선영은?
스승님이 생각하는 박선영
[학생 박선영은?] 성격은 아주 침착 상냥하고 타고난 여성상을 갖고 있습니다. 인물 그대로, 사진을 보여드릴까요. 이게 박선영인데요, 무용도 하고 특히 발레를 좋아했어요. 각종 행사마다 사회를 하고 원체 똑똑하고 말을 잘하니까 그리고 또 예쁘고, 참 남에게 싫은 소리를 안 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따르고 좋아했고 선생님들도 아주 좋아했죠.
[교육철학] 저는 학교 때부터 교육 목표를 열린 교육을 지향하고 자유민주주의 문화의 습득, 2가지를 관점 목표로 삼고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자 박선영에게] 교수직에 있기를 바랐거든요. 편안하게 살았으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국회의원도 하고 조금 걱정을 했지요. 너무 힘든 일하고 고생을 하니까. 다시 생각해보니까 박선영 같은 사람이 교육감이 된다면 교육을 정말로 잘할 것이다. 또 자기 본분을 다 하리라고 생각하는 의미에서 저는 정치도 모르는 입장이지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2023년 5월경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5.16 군사정변을 혁명이라 부르며, 정변이 발생했을 때 반대한 국민이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성향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1,173,463 (8.84%) | 당선(3번) | 초선 |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서울특별시교육감 | 보수 | 1,762,258 (36.15%) | 낙선 (2위) | |
2022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978,935 (23.10%) | 낙선 (3위) |
안병하 프로필 (경찰 군인 치안감 37대 전라남도경찰국장) 이름안병하安炳夏 | Ahn Byeong-ha출생1928년 7월 23일강원도 양양군 양양면 남문리사망1988년 10월 10일(향년 60세)서울특별시학력양양공립보통학교 (졸업)시라오카 제국중학교 (졸업)광신상업고등학교 (졸업)군인…
이봉규 프로필 (언론인 우파 유튜버 부정선거 주장) 이름이봉규李鳳奎 | Lee Bong Kyu출생1958년 3월 17일 (66세)서울특별시학력고베국제대학 경제학부 (경제학 / 학사)조지 워싱턴…
차주영 프로필 (배우) 이름차주영車珠英 | Cha Jooyoung출생1990년 6월 5일 (34세)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국적대한민국신체171cm|50kg|245mm|AB형가족부모님학력상도중학교 (중퇴)대원외국어고등학교 (졸업)유타 주립대학교 (경영학 / 중퇴)유타 대학교 (편입학)유타 주립대학교 (경영학 / 학사)종교가톨릭 (세례명:…
건진법사 프로필 (승려 종교인 명태균 게이트) 이름건진Gun-jin본명전성배생년월일1960년(64세)국적대한민국소속일광조계종 개요 대한민국의 종교인, 승려다. 일명 "건진법사"로 불리고 있다.…
박경림 프로필 (MC 진행자 방송인) 이름박경림朴京林|Park Kyungrim출생1978년 12월 8일 [입학유예] (46세)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갈현동(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국적대한민국본관충주 박씨 (忠州 朴氏)신체155cm|50kg|AB형가족아버지 박우철, 어머니 이해선, 오빠…
송민호 프로필 (래퍼 보이그룹 WINNER) 이름송민호MINO본명송민호(宋旻浩, Song Minho)출생1993년 3월 30일 (31세)경기도 성남시거주지서울특별시 마포구국적대한민국본관은진 송씨 (恩津 宋氏)신체178cm|66kg|A형가족아버지 송재운, 어머니(1969년생)여동생 송단아(1994년생)사촌동생 샵건(1994년생)반려묘 죠니(♀, 먼치킨), 반려조…